1930년대의 독립운동 이야기는 21세기 한국에서 상업영화로 다뤄지지 못했다. 1910~20년대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다룬 사례로는 『봉오동 전투』, 『밀정』, 『영웅』등이 있다. 1930년대를 다룬 작품으로는 『아가씨』, 『경성학교』 등이 있다. 그러나 1930년대의 무장투쟁을 다룬 직접 다룬 상업영화는 『암살』이 독보적이다. 사실상 다른 작품을 찾으려 해도 찾기 힘들다.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는 때마다 철마다 여러 번 감상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차츰 눈에 들어오는 다양한 요소들을 분석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내게도 현생이 있으니 영화 전체를 분석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결혼식 장면을 중심으로 영화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나는 영화에 관해 전문가도 뭣도 아닌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다. 내가 하는 모든 분석은 나만의 뇌피셜이고, ‘진짜’ 감독의 의도등은 하등 상관이 없다. 이건 그저 영화에 대한 나만의 독해이다.
미츠코와 안옥윤
결혼식 장면을 독해하기에 앞서, 먼저 미츠코와 안옥윤의 관계에 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둘은 설정상 쌍둥이로, 얼굴만으로는 서로를 분간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현실에서 성인이 된 쌍둥이를 얼굴만으로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당연한 일이 아니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자란 사이라면 모를까, 한 사람은 만주에서 평생을 전장터에서 구른 군인이고, 한 사람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혀보지 못한 규수인데, 어떻게 피부색이든, 뾰루지든, 체격이든, 차이점이 전혀 없을 수 있을까?
이렇게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일수록, 감독의 의도가 담긴 모종의 영화적 장치로 해석하는 것이 감상의 재미를 배로 만든다. 이 경우, ‘미츠코와 안옥윤이 정말로 똑같이 생긴 쌍둥이’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미츠코와 안옥윤은, 같은 인물의 서로 다른 측면을 상징하는 장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미츠코는 “독립운동은 좋아하지만, 내 가족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현실에 안주하고 시대로부터 주어진 삶을 살아가려는 자아, 안옥윤은 불의를 대면하고 현실을 스스로 엮어나가려는 자아를 상징한다.
이렇게 봤을 때, 강인국(이경영 분)이 미츠코를 살해했을 때, 미츠코는 소멸한 것이 아니라, 강인국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안옥윤과 함께하는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미츠코를 안옥윤으로 오인한 강인국은 그녀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유리창 너머에서 안옥윤은 이를 지켜본다. 안옥윤의 원래 옷은 미츠코가 (굳이) 불태워버렸고, 지금은 미츠코가 준 옷을 걸치고 있다.
신부 입장
조선인 여성과 일본인 남성의 결혼은 누가 봐도 한일합병을 상징한다. 현실속의 결혼이었어도 누구나 그런 상징성을 부여하거나 발견했을 결혼이다. 이런 관점에서 각 등장인물은 각각 다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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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옥윤(전지현 분) - 하얀 옷을 입은 백의민족, 또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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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국(이경영 분) - 속에는 하얀 옷을 입은 백의민족이지만, 겉에 검은 옷을 두른, 조선(안옥윤)을 일본(카와구치)에게 팔아넘겨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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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구치(박병은 분) - 조선을 취하려는 일본을 상징한다. 온통 검은색인 군복을 입어 신부와 대조된다.
안옥윤은 하얀색, 강인국은 하얀 내의에 검은 외투를 입었다.
신랑측은 모두 검은 의복을 입었다.
결혼식이 매국노가 조선을 팔아먹는 과정이라면, 그 이후의 전투신은 이에 대한 저항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차적으로 이 결혼식은 전체 영화의 요약으로 기능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분석해보자. 결혼식 장면은 강인국이 결혼식 입장 엘레베이터에서 미츠코에게 “무슨 생각하니, 미츠코?”라고 묻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안옥윤은 이에 대해 “만주에서 온 언니는 왜 죽이셨어요?” 라고 답한다. 단순히 넘어가려면 넘어갈 장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안옥윤이 정말 암살자로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면 할 수 없는 말임을 알 수있다.
암살의 성공을 위해선 마지막 순간까지 변수를 만들어선 안 된다. 핵심 타겟 중 한 명에게 그의 비밀을 알고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임무 완수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할 말이 없다면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 나요” 라던가 하다못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등으로 얼마든지 무마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미츠코의 발언 이후, 강인국의 눈동자에서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암살 대상이 치열하게 상황파악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암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 아니다.
다시, 이런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은 영화적 해석을 바라는 장치가 장면에 숨어있음을 나타내는 표지판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봤을 때 가능한 해석 중 하나는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안옥윤이 아니라, 미츠코라는 것이다. 이제 조금씩 안옥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기 시작한 미츠코. 따라서 다음 몇 분의 전투씬은 그저 조선이 일본에 팔려가고, 조선이 반항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츠코가 조금씩 안옥윤이 되어가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게 된다.
총격 시작
실제로 속사포의 사격이 시작되자마자, 미츠코는 엎드려 엄폐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인 총을 내동댕이치는 모습을 보인다. 역시 신부가 안옥윤이라면,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다. 충분한 전투 훈련을 받고 실전 경험도 많은 안옥윤에게, 전투중 총을 팽개치는 일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그 이후에는 떨어뜨린 총을 잡기 위해 주저하는 장면이 짧지 않은 분량으로 이어진다.
총격전이 벌어지자, 자신의 생명과 같은 무기인 총(부케)를 본인 뒤편으로 내동댕이 치는 미츠코(안옥윤). 내동댕이가 상당히 부자연스럽다.
손을 뻗으려 하지만 총알이 빗발치자 쉽게 손을 뻗지 못한다.
살기 위해 총을 내동댕이친 사람, 엎드려 안전한 곳으로 숨은 사람, 총을 집으려 하지만 이내 주저하는 사람이 나는 안옥윤이 아니라 미츠코라고 생각한다. 속사포의 생존을 확인하고 클로즈업되는 전지현의 얼굴이 안옥윤의 것이었다면, 그 눈동자가 이렇게 흔들릴 필요가 있었을까?
속사포가 아직 살아있고, 혼자서라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음을 깨달은 장면. 죽은 줄 알았던 동료가 살아서 임무에 참여하러 온 것을 깨달은 사람의 눈빛이라기엔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이 더 많이 엿보인다.
그러나 기어이 미츠코는 결의를 다진다. 신랑신부를 상징하는 공작새 그림 속, 신부(조선)을 상징하는 암컷 공작에게만 묻은 혈흔을 마주한 것일까. 기회가 왔을 때, 미츠코는 냅다 총을 향해 뛰어든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안전지역을 벗어나 총탄이 난무하는 현장으로, 그야말로 뛰어드는 안옥윤. 그 뒷편에는 신랑신부를 상징하는 공작그림에, 하필 신부 공작 쪽에만 피가 묻은 것이 보인다.
미츠코가 안옥윤으로
엎드린 자세로 총을 얻어낸 미츠코는, 조금씩 일어선다. 처음에는 무릎으로 서서 첫 격발을 한다. 조그마한 피스톨의 격발에 의한 것 치고, 부케는 호쾌하게 터진다. 부케는 어쩌면 그 총을 감추기 위해 감내했던 모욕과 굴욕들의 상징이었기 때문일까. 부케가 터지는 순간 부터 미츠코는 조금씩 두 다리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드디어 결의를 품고 부케 속에 숨겨둔 총을 격발하는 미츠코. 격발과 함께 터져나가는 부케가 묘한 쾌감을 준다.
이 역시 조금은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이다. 이미 엎드려 총을 집은 시점에서, 안옥윤은 그대로 엎드려서 사격을 할 수도 있었다. 내 몸을 무릎만으로 고정하는 것은 흔들리기 쉽지만, 몸 전체를 땅바닥에 밀착하면 온 몸으로 나를 고정 할 수 있다. 피탄면은 말도 안 되게 줄어든다. 적어도 눈 앞의 두 명을 해치우는데, 엎드려 있다고 시야 확보가 안 될 것도 없다.
따라서 미츠코가 조금씩 일어서는 장면은, 피탄면과 비례하는 그 위험들을 조금씩 감수하는 존재, 즉 안옥윤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슬로우모션으로 한 동작 한 동작을 관객이 볼 수 있도록 연출한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그 눈빛이 안옥윤이 직전에 수행했던 작전 중 사격을 할 때와는 달리 여전히 떨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너는 누구냐
뒤이어 일본을 상징하는 신랑 카와구치(박병은 분)가 안옥윤을 저지하며 묻는다. “너는 누구냐” 라고. 마치 눈 앞의 여자가 미츠코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는 태도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시점의 카와구치에게 이런 확신이 있는 것은 이상하다. 카와구치는 미츠코와는 오래 알던 사이인 한 편, 강인국이 열심히 그 존재를 숨긴 미츠코의 쌍둥이 동생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을테니 말이다. 실제로 나중에도 안옥윤을 쌍둥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미츠코가 백화점에서 봤던 여자가 당신이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카와구치는 잠깐이라도 “당신 왜 그래?” 라고 묻지 않는다. 하다못해 “너 미츠코 아니지?” 같은 확인도 하지 않는다. 카와구치는 총을 쏘는 여자가 미츠코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너는 누구냐”고 묻는다.
이렇게 봤을 때, 이 질문은 정말로 신랑이 신부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두려움에 숨고자 했던 미츠코는 더 이상 미츠코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완전히 안옥윤으로 거듭났음을 관객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사람의 본질은 그의 이름이 아니라 그가 하는 선택과 행동임을 역설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방금까지 자기 신부였던 사람에게 누구냐고 묻는 카와구치. 생각해보면 어색한 질문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카와구치에게 완력으로 제압당하기 직전의 안옥윤은 샹들리에를 겨냥해 떨어뜨린다. 번영의 상징인 샹들리에는 추락하여 무대를 일순간 화염으로 집어삼킨다. 그러나 관객이 이 화염이라는 파멸에 눈을 돌린 사이, 안옥윤은 그 격발의 잔열로 카와구치를 제압한다.
그런데 이것도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왜 굳이 안옥윤은 샹들리에를 겨냥까지 한 것일까? 격발의 잔열을 이용할 생각이었다면, 그냥 아무거나 쏴도 되었을 것을. 특히 이는 바로 뒤이어 하와이피스톨이 샹들리에를 쏴서 딱 조명만 꺼뜨리는 장면과 크게 대비된다.
따라서 안옥윤이 굳이 샹들리에를 겨냥하고 이를 떨어뜨린 것은, 카와구치의 “너는 누구냐?” 에 대한 대답이라고 읽을 수 있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 나를 아름답게 비춰줄 저 샹들리에를 떨어뜨려 깨뜨리는 사람이라고. 나를 비출 조명을,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반짝이는 샹들리에보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이 어울리는 여자라고.
강인국을 처단하지 못하는 미츠코
이어서 안옥윤은 마지막 임무를 끝내기 위해 강인국을 찾는다. 강인국은 묻는다. “미츠코는 어디있니?”
역시 생각해보면 이상한 질문이다. 이 시점에 강인국은, “만약 저 여자가 안옥윤이라면, 내가 죽였던 것은 미츠코였다” 정도의 결론은 낼 수 있었어야 했다. 그에게는 머리를 굴릴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이 결론을 낸 상태라면 “미츠코는 어디있니” 라는 질문은 정말 바보같은 질문이다.
따라서 다시 한 번 영화적으로 이 질문을 해석해보자면, “(안옥윤, 네 안에 있던) 미츠코는 어디있니?” 라는 질문이라고 해석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소시민적으로 불의를 외면하던 네가, 어쩌다가 불의를 마주하고 나아가 용기내어 행동까지 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를 묻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미츠코는 대답한다. “죽이셨잖아요. 그 손으로”.
이 대사 역시, 위 맥락에서 이어서 독해하자면, 미츠코라는, 불의를 애써 외면하던 나를 끝내 무너뜨린 것은, 그 불의를, 마침내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 모습을 끝끝내 면전에다 대고 보여준 강인국, 사람과 나라를 강탈한 남자(強人國) 당신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라고 해석 할 수 있다.
이어서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 또 나온다. 암살 대상을 눈 앞에 두고 미츠코는 눈을 감는다. 죽이려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눈을 감다니. 그 사이에 상대방이 무슨 변수를 일으킬 줄 알고. 아니나 다를까 강인국은 그 찰나에 옆에 떨어진 권총을 들어 미츠코를 살해하려 한다.
암살대상을 눈앞에 두고 눈을 감는 미츠코. 안옥윤이라면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권총은 그 주인이었던 병사의 허리띠에 결박되어 있어 강인국이 원하는 대로 겨냥이 되지 않았다. 강인국은 살의를 드러낸 이후로도 몇 초인가를 애써 총을 겨냥하려 든다. 이 시점이면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강인국을 해치웠어야 하는 시점이다. 따라서 원래 암살 대상이였던 사람이자, 당장 나를 죽이려는 사람을 앞에 두고 격발을 머뭇거리는 것은 이상하다.
이는 지금 총구를 겨누고 있는 사람이 안옥윤이 아닌 미츠코라는 것을 강하게 말해준다. 안옥윤이야 강인국이 기억에도 없는 낯선 남자이지만, 미츠코 입장에서는 평생동안 “좋은 사람” 이었던, 중요한 추억을 함께한 아버지이다. 미츠코가 아니라면 이렇게 임무를 머뭇거리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한 편 끝내 미츠코로서 암살에 실패한 이 장면은, 매국노 처단에 끝내 실패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 마무리는 끝끝내 염석진의 암살로 끝나지만, 우리 모두 그것이 허구임을 알고 있다. 영화가 가상의 암살로 끝났듯, 이 장면에서 강인국의 처단도, 완벽한 가상의 인물인 하와이 피스톨에 의해 실행된다. 물론 안옥윤도 허구의 인물이지만, 최소한 실제 모델-안창호,김상옥,윤봉길, 남자현 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하와이피스톨과는 대비된다.
그래서 유독 이 장면은 답답하게 묘사되고, 또 끝내 강인국이 처단되는 순간도 드라마틱하게보다는 초라하게, 김빠지는 느낌으로 묘사된다. 허구 속에서만 친일파를 처단 할 수 밖에 없는, 또 없었던 역사와 현실의 답답함을 그대로 묘사하려던 의도이지 않았을까.
이 영화가 후련하다면 실패한 것 이라는 감독의 인터뷰 처럼, 기관총을 우다다 갈기고 수류탄을 뻥뻥 터뜨리는데도 끝끝내 이 장면속에선 후련함이나 시원함이 아닌 ‘아쉬움’ 이 남는다. 짧고 화려한 액션 씬 안에 작품 전체의 주제의식과 다양한 상징을 꾸깃꾸깃 녹여내어 인상깊은 김빠짐 을 연출해낸 이 장면은, 내 영화 인생에서 손에 꼽는 멋진 장면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