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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국가란 무엇인가

Created
2018/08/28
Tags
Book
Review
Politics
History
2009년에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 때 용산에서는 사람들이 불타 죽었고, 촛불시위는 물대포로 진압되었다. 학교에서 자습을 하다가 노무현이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이어 김대중도 죽었다고 했다.덕수궁 미술관에 갔다가 쌍용차 희생자들의 빈소를 보았고, 등교를 하면서 아현동이 통째로 헐리는 과정을 보았다.
학교에서는 일상적으로 폭력을 경험했고, 그 폭력을 우수워보이게 만드는 국가의 폭력을 계속해서 목격했다. 그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라면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왜 그들은 그렇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지. 왜 그래도 되는지. 그리고 내가 그 폭력에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국가란 무엇인가』 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지도를 제공한다.
책은 먼저 국가의 주요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네 가지 보편적인 견해, 즉 국가주의/자유주의/공산주의/목적론적 국가론을 소개한다. 그리고 각각의 관점에서, 한국에서 2009년에 있었던 것과 같은 국가의 폭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소개한다.
...(남일동 빌딩에서) 죽어간 시민들에게 국가는 과연 무엇이었나? 이 질문에 대해서 네 가지 대답이 나왔다. 서로 다른 이 대답들은 우리가 국가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첫째, 국가가 할 일을 제대로 했다는 주장이다. "농성자들의 폭력은 무고한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도심 테러행위로 볼 수 있다. 경찰특공대의 임무는 시설불법점거, 난동 등 주요 범죄를 예방, 진압하는 것이다." ...(중략) 둘째, 국가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견해다. ...(중략)... 남일당 빌딩 농성은 개발이익의 분배를 둘러싸고 벌어진, 건설회사와 재개발조합을 한편으로 하고 세입자들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집단적 이익분쟁이었다. 민간의 이익분쟁에 곧바로 뛰어들어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은 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셋째, 국가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시각이다. ...(중략)... 국가는 기득권자만을 떠받드는 '계급지배의 도구'이다. 용산참사는 국가가 원래 그런 존재이며, 그 성격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중략) 넷째,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용산참사는 국가가 불의한 법을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어느 한 편에 치우쳐 법을 집행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 국가란 무엇인가 27p
사실 이 4가지 국가론은 모두 우리가 고등학교 때 어떤 형태로든 접하게 되는 개념들이다. 그러나 이 개념들을 우리는 다른 나라의 역사, 수 백년전의 혁명을 통해서 이 국가론들을 배웠다. 프랑스 사람이 쓴 사회계약론이 프랑스 혁명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창백한 활자로, 시험을 위해서 배웠다. 그래서 그 때 배웠던 개념들은 가슴에 와닿지 않았고 시험 기간이 끝나자 다른 많은 지식들과 함께 머리속에서 지워졌다.
『국가란 무엇인가』는 이 4가지 국가론을 우리가 경험한 역사, 혹은 현재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풀어낸다. 우리가 직접 목격했고, 분노했고, 절망했던 사건들을 통해 배우는 국가론들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우리에게 구체적이고 단단하게 다가온다.
국가론에 대한 교양은 민주국가의 시민에게 필수적인 교양이다. 이 교양은 결코 수능이 끝났다고 머릿속에서 잊어버려도 되는 교양이 아니다. 이 교양을 바탕으로 우리가 국가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길들일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교양을 어디서부터 쌓을지 막막하다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는 탁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