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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서평

Created
2023/07/09
Tags
Book
Review
Science
Philosophy
흔히 행복이 인생의 목표라고들 말한다. 행복하기 위해 풍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행복하기 위해서는 마음가짐이 달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모두 행복이 인생의 목표라는데에는 이견이 없다.
『행복의 기원』은 행복에 대한 이같은 수천년 동안 견고하게 이어져 내려온 관점을 코페르니쿠스처럼 뒤집는 다양한 연구결과들을 소개한다. 책에 의하면,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인생이 행복의 목표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행복은 생명체의 다른 모든 습성/생김새/행동과 마찬가지로, 결국 생존과 짝짓기를 위한 도구이다.
행복이라는 지고의 가치가, 생존이나 짝짓기같은 저급한, 심지어 망측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점은 곧바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책은 인간은 100% 동물이다 라는 점을 설명하는데 꽤 긴 분량을 할애한다.
이처럼 하나의 자극에 노출 되었을 때, 의식적인 지침이나 의도 없어도 다음 자극에 대한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Priming 이라고 한다. 인간은 이러한 행동변화의 원인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 다른 이유를 가져다 붙이곤 한다.
이처럼 인간의 행동이 의식수준에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리고 인간의 모든 행동원리가 결국 생존과 번식에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나면
그저 연인과 해변을 걷는 상상을 하도록한 실험군이, 돈을 보상으로 받는 대조군보다 더 높은 창의력을 발휘하는 피카소 효과
등등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우리는 결국 동물이고, 다른 동물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생존과 번식을 위한 비직관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이기까지하는 수많은 선택을 끊임없이 이어나가고 있다.
인간이 동물이고, 행복이 생존과 번식의 도구임을 받아들였다고 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은 "어떤 행동이 행복을 일으켰을 때 가장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될까?" 이다. 이에 대해 책은 결국은 사람이다 라고 말한다.
약한 동물들은 무리를 이루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예를 들어 비둘기가 더 여러 마리 모여있으면 매의 사냥확률은 떨어진다. 또 흡혈박쥐는 사냥에 실패했을 때 이웃에 도움을 받고, 나중에 형편이 괜찮을 때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도움으로써 비상상황에 대응한다.
인간도 다르지 않았다. 초창기 인류는 나무에서 10여명 정도가 무리생활을 했는데, 초원으로 터전이 바뀌게 되면서 더 위험에 많이 노출되는만큼, 자연히 더 무리를 크게 만들 필요가 생겼다. 그에 따라 다양한 구성원들과 교류하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그들의 신뢰를 얻거나 의중을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이러한 상황이 인간의 뇌를 성장시킨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이 사회적 뇌 가설 (social brain hypothesis)이다.
이 당시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거나, 이별을 겪는 사회적 고통은 실제 생존에 직결되는 실존적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도 사회적 고통을 느끼는 뇌 부위는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뇌 부위와 다르지 않다. 얼마나 다르지 않냐면, 이별과 같은 사회적 고통을 느낄 때 타이레놀등의 진통제를 먹은 실험군이 대조군에 비해 더 빨리 사회적 고통이 완화되었다는 연구결과가 있을정도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사람들의 행복감이 높다는 연구결과는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남과 고기를 나눠먹는 행동은 장기적으로는 신뢰를 얻어 생존을 유리하게 해주지만 단기적으로는 손해다. 이 손해를 메꾸어 유리한 전략으로 유도하는 것이 행복감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물질보다 경험을 구매하는 이들이 행복하다는 연구결과도 이해된다. 일반적으로 물질은 혼자서 사용하지만, 경험은 함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후속 연구에 의하면 같은 물질 획득이더라도, 사회적 관계를 향상시키는 (즉, 함께 사용하는) 물질(게임기 등)은 행복을 증진시킨다.
한 편, 행복의 근원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다른 발견은, 인간은 어떤 행복한 경험을 하더라도, 여기에 빠르게 적응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새로 생긴 연인, 대학의 입학 등 좋은 일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은 3개월 정도였다.
이처럼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같아서 금방 녹아 없어진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행복의 목적이 결국 생존과 번식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와 같은 쾌락의 쳇바퀴 (hedonic treadmil) 현상은 충분히 납득된다. 생각해보면 쾌락이 소멸되지 않으면, 생존에 불리해진다. 예를 들어 식후의 행복이 지속되면 추가 사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승진의 기쁨이 지속되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진화론적으로, 큰 기쁨은 지속될 수 없기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거꾸로 작은 행복을 꾸준히 맛봐야 한다.
왜 우리가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위험한 도전을 무릅쓰거나, 심지어는 희생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러한 행복이 왜 지속되지 않는지 책은 일관되게, 그리고 충분히 설명한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따라오는 질문은 "그래서, 어떻게 하면 행복 할 수 있는가"이다.
이는 생각보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는 않는단 점이다. 오히려 연구에 의하면 사랑보다 돈을 중시할 수록 행복도가 낮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행복은 외적인 조건(돈, 건강, 학력, 지능, 성별, 나이) 등을 다 고려해도, 개인차의 10% 정도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사회가 인간의 생존에 직결되기에 중요했다면, 돈은 주변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생존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에 따라 사회적 쾌락이나 눈앞의 식욕보다 우선된다. 실제로 돈에 대한 암시를 받은 실험군은, 대조군에 비해 초콜릿을 더 빠르게 먹고 덜 음미하며 덜 웃으며 먹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란 발명품이 생긴 것은 진화론적으로 찰나의 순간이고, 아직 인간은 생리적으로 초콜릿과 사회관계를 통해 쾌락을 얻는다. 따라서 생존에 필요한 수준 이상의 돈에 집착하게 된다면, 큰 돈을 얻었을 때 단기적으로는 큰 기쁨을 얻을 수 있겠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그 기쁨은 금방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사라진다. 행복하기 위해선 가끔씩 큰 성과를 만들기보다, 소소한 작은 쾌락을 지속시켜야 한다.
책은 행복에 대한 다양한 연구결과들을 이해하기 쉬운 사례와 용어들로 재미있게, 그리고 무엇보다 일관되게 풀어주어, 행복을 사냥하기 위한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함께 행복했으면 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할 때, 한 꼭지 씩 소개하고픈 재미있는 지식들이 풍성하게 담겨있다.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