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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백석 정본 시집

Created
2020/01/08
Tags
Book
Review
Poem
Literature
백석의 시를 감상하는 일은 아주 어렵다. 그가 다양한 지역의 방언과 고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어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읽기 어렵다. 또 그가 주로 시를 발표한 시점이 1930~40 년대이기 때문에, 그가 당시에 표준어로 쓴 시들 조차도, 오늘날에 다시 본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많다. 나아가 그 당시 시가 발표된 문헌들이 낡고 바래서 표기가 지워지거나 애초에 인쇄가 잘못 된 것으로 여겨지는 판본들도 많다.설상가상으로, 그는 해방 이후 북한에 남아 활동했기 때문에, 남한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선 그와 소통 할 수 있는 길도 없었다.
『정본 백석 시집』은, 백석 시를 이해하는데 따라오는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게 하기 위한 국어학계의 노력의 성과물이다.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고형진 교수는, 여러 인쇄본들을 비교해 인쇄상의 오류가 난 부분이 어떤 곳인지 검증하고, 평안도가 고향인 분들에게 도움을 얻어 백석 시의 평안도 방언에 대한 이해를 얻고, 그 외에도 다양한 학계의 여러 최신의 성과들을 종합하여 백석 시의 원본을 확정하고, 여기서 한자표기, 맞춤법, 오탈자 등이 수정된 정본을 정제해 내었다. 또한 각종 고어와 우리말들에 대한 낱말 풀이도 함께 엮었다. 특히 낱말 풀이는, 그저 각 낱말의 사전적 의미만을 나열하지 않고, 백석이 살았던 시대와 지역에 대한 맥락과 함께 설명하려 노력했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닢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정본 백석 시집』 57쪽, 모닥불 일부 인용
백석은 하찮은 단어들에서 보석같은 아름다움을 캐내어 아름다운 시로 엮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시는 비록 우리가 그의 시에서 몇 몇 단어들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울림을 준다. 그러나 『정본 백석 시집』은 우리가 놓칠 수 밖에 없는 여러 단어들을 주석의 형태로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갓신창은 가죽신의 밑창, 개니빠디는 개의 이빨, 닭의 짗은 닭의 깃....이렇게 2020년대 남한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확실하게 정리된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시를 감상하면, 또 완전히 색다른 감상을 즐길 수 있다.
예컨대, 나는 처음에 모닥불을 읽었을 때는, 그저 여러 잡다구리한 물건들로 모닥불을 피우는 장면을 묘사했구나 라고만 생각했다.하지만 단어들의 설명을 듣고서 다시 시를 보니, 굉장히 섬뜩한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닥불은 새끼오리와, 개의 이빨, 머리카락, 닭의 깃털을 재료로 타고 있다. 모두 살아있는 것들이다. 이빨 없는 개는 죽었을 것이다. 깃털 빠진 닭도 죽었을 것이다. 새끼오리는 말 할 것도 없다. 인간의 머리카락도 원해서 잘린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모닥불은, 단백질이 타는 냄새를 가득 풍기는, 찐득한 모닥불이었을 것이다. 이 모닥불의 냄새를 맡으며 온기를 쬐는 장면은, 결코 아기자기하고 즐거운 장면이 아니라, 차가운 비극에 몸서리가 쳐지는 장면일 것이다.
이처럼 백석의 시는 그냥 드문드문 보이는 예쁜 말들을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지만, 『정본 백석 시집』에 들어간 여러 국어학 연구자들의 노력은 그의 시를 훨씬 깊이 있게 이해 할 수 있게 해준다. 조금이라도 백석의 시에서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춰보아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