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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Created
2021/06/20
Tags
Review
Film
앤의 부모님은 한국에서 왔다. 원래는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가, 지금은 아칸소로 왔다. 아버지는 아칸소에서 한국 농작물을 길러 한국인들에게 파는 사업을 벌이면 성공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칸소는 분명 기회의 땅이지만, 불안한 땅이기도 했다. 집을 종이비행기처럼 날려버릴 수 있는 허리케인이 생기는 곳이고, 가장 가까운 병원은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려야 나오기도 한다. 아버지는 기회를 더 많이 봤고, 어머니는 불안을 더 많이 봤다. 그 둘은 그래서 자주 싸웠다. 아버지의 기회와 어머니의 불안은 모두 현실이 되었다. 아버지의 농작물은 인정받았고, 그 농작물들이 모두 불타버렸다. 가족들에게 남은 것은, 할머니가 깊은 숨속에 심어 둔, 뱀이 나오는 강가 옆에 뿌려둔 미나리 뿐이다.
정이삭 감동의 영화 「미나리」는 이민자 가정의 기대와 불안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미국은 분명 기회의 땅이고, 어떤 의미에서 그 기회에는 실체가 있다. 하지만 기회는 확률이고, 언제나 100%가 아니다. 기회를 얻어 성공을 얻기 위해선, 많은 시도, 즉 많은 실패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실패를 감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의 도전은, 결국 식수를 농수로 쓰는, 제 살을 깎아먹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떠난 많은 이민자 가정은 어떤 형태로든 이렇게 제 살을 깎아 먹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 같다. 그 불안과 절망에 대한 공감대가 아마 「미나리」가 미국에서 많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런데 제 살을 깎아먹는 도전을 한 많은 가정 중 성공을 이루어 안정적인 터전을 가꾼 가정은 몇 이나 될까. 자신들을 미나리에 비유하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결국엔 이겨낼 수 있었다고 과거를 회상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 성공을 일군 소수의 특권은 아닐까? 지나치게 시니컬한 반응 같기도 하지만, 하필이면 이 영화가 만들어진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느 나라보다도 기업가 정신을 중시하고 도전을 응원하는 나라가, 한 편으로는 도전에 실패해 가난해진 이들에게 구급차를 탈 권리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러니까 실패에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희망을 암시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그저 공감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