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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 지원을 미루는 일, 인종차별입니다.

Created
202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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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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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접근성지원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면 자주 나오는 반응으로, "접근성 지원, 하면 좋죠"와 같은 반응이 있습니다. 그러나 접근성 지원은 "하면 좋은 일"이 아닙니다. 접근성 지원을 잘 했다고 해서 칭찬 들을 일도 아닙니다. 접근성 지원을 제대로 못 했을 때 욕 먹을 일입니다. 그런데 아마 이렇게 얘기하면 아주 많은 분들이 "그게 왜 욕 먹을 일인지"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그 공감과 이해를 얻고자 쓰는 글입니다.

인종차별, 당하기도, 행하기도 싫지 않으신가요?

이제 주변에 해외에서 체류한 사람을 찾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경험담을 이야기 합니다. 동양인을 만났을 때 눈을 찢는 세레모니를 하는 일, 무작정 중국어로 말을 거는 일, 특히 요즘에는 "코로나를 옮긴다"며 폭행을 가하는 일 등등이 뉴스에 종종 올라옵니다. 듣기만 해도 기분나쁘고 섬뜩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인종차별을 실행한다고 생각하면 어떤가요?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보다, 인종차별자로 지목받았을 때 저는 더 기분이 나쁘고, 또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아마 양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어느 누구나 비슷할 겁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접근성 지원을 하면 좋은 일 이라고 여기는 일도, 일종의 인종차별이다"라는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런 발언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셨다면, 기분이 나쁘셨다면, 부디 기분 푸시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이런 발언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독자분의 내면에 양심이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기분나쁨을 잠시 한 곳에 미뤄두고, 제 이야기를 마저 들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장애인 유저를 고려하지 않는 이유

대부분의 서비스에서 장애인 유저를 고려하지 않고 서비스를 만듭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장애인을 고려할까 말까" 라는 생각 자체도 해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장애인의 존재를 상상하기도, 지각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장애인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기 때문에, 상상 할 수도 고려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장애인도 이 앱을 쓰고 싶어 한다"라는 얘기를 한다고 해봅시다. 이제 최소한 장애인 고객의 존재 자체는 알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사람들은 장애인 고객을 고려해 제품을 만들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어떤 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방식을 바꾸기는 겁이 납니다. "시각장애인도 편하게 앱을 쓸 수 있도록" 만들라니! 생각조차도 해 본적이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요? 시각장애인도 아닌 나는, 그들이 어떻게 우리 앱을 쓰는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장애인도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제품을 만드는 일에 드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이 "두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 경험하지 못한 일을 시작하는데 두려움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꾸준히 그런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는데 익숙하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학교를 갈 때, 연애를 할 때, 직장에 갈 때, 결혼을 할 때, 아이를 낳을 때, 우리는 언제나 두려움을 마주하고, 끝내 그것을 극복해 갑니다. 그런데 유독, 접근성을 지원하는 일에 있어서 이 두려움을 넘는 사람들이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애인은 많지 않으니까요

사람들은 마주하기 두려운 일이 있을 때, 핑계를 댑니다. 학교 가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기 싫어 거짓말도 합니다. 그리고 핑계가 그럴듯 할 수록, 용기를 내기란 더 어려워 지지요. 접근성 지원을 미루거나, 우선순위를 낮출 때도, 이런 핑계가 사용됩니다. 그 중 가장 많이 쓰이는 핑계가 바로, "장애인은 수가 적다. 그 적은 사람들까지 고려해 제품을 만든다면 너무 큰 비용이 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명제는 거짓입니다.¹ 그러나 논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일단 참이라고 해보겠습니다.
장애인의 수가 적다는 것이,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을 이유가 정말로 될까요? 그렇다고 생각 한다면, 당신이 만드는 제품의 Crash 대시보드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모르긴 몰라도, 요새는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대부분의 크래시 문제를 예방하거나 해결하게 되었으니, 많은 제품에서 Crash-Free 유저의 비율이 99% 내외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제가 몸 담았던 대부분의 조직들에서도 그랬고요.
그렇기 때문에 크래시가 난다면, 대부분은 1~2명 정도에게서 우발적으로 발생합니다. 수십명 규모는 되어야 "아 이 크래시는 재현이 되는구나. 빨리 대응 해야겠다" 판단을 하게 되죠. 그리고 제가 마주 했던 가장 영향범위가 컸던 크래시조차 수백명 규모 이상의 유저에게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습니다. 영향받는 유저의 수가, 그 유저들에게 신경써야 할 근거라면, 왜 우리는 수십, 수백명 단위의 크래시에 긴급한 알람을 울리며 때로는 한 밤중에도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그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려고 할까요?
한 편, 요새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좋아져서 크래시가 발생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그랬죠? 그렇기 때문에 요새도 발생하는 크래시는, 그 원인을 분석하기도, 또 그것을 고치기도 아주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몇 날 며칠을 이 문제 해결에 매달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 기기에서 재현이 되지 않아, 실마리를 잡기 위해 로그를 수집하기 위한 수정을 하고, 그 로그에 실마리가 잡힐 때까지 몇 주씩 기다리고, 그 로그들을 분석해 문제를 해결하기 까지 몇 달이 걸리기도 합니다. 어떤가요. 아주 적은 수의 인원에게 미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단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 너무나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접근성이 지원되지 않는 제품은, 장애인 입장에선 "켤 때마다 크래시 나는 앱"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용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장애인은 수가 적지도 않고, 접근성을 지원하는 일이 어렵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줌의 유저에게 영향을 미치는 크래시를 해결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수백만 명의 장애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접근성 문제를 고려하는 일에는 왜 이리도 소극적인 것일까요?

장애인이어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 받기 때문에 장애인입니다.

결국 다시 이 얘기로 돌아오네요. 사실 이 얘기는 작년에 작성한 글, "대구 사람들은 우리 앱을 쓰지 못한대요 라는 버그의 심각성은?"에서 이미 충분히 다룬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기선 위 글의 요지를 간략히 요약만 해보겠습니다.
흔히들 장애의 원인을 개인의 신체적 결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 버스에 탈 수 없는 이유는, 그가 휠체어를 타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이죠.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버스도 결국 누군가의 디자인에 의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디자이너가 "40대 중반 남성은 사용하기 어려운 형태"로 버스를 만들었다면 많은 지탄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휠체어 사용자가 사용하기 어려운 형태"로 버스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에게는 지탄이 가해지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은 버스를 타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차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이 불편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운명이라고,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마치 자신은 절대로 장애인이 되지 않는 운명의 보호를 받고 있기라도 한 것 처럼, 우리가 그들을 사회에서 배제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장애인도 우리 앱을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는 일은, 그 차별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장애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람으로만 보면, 한 사람의 고객으로만 대하면 결코 취하지 않을 태도를 취하는 일은, 장애인을 우리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보는, 우리의 시혜를 받아야 할 2등 시민으로 바라보는, 인종차별과 결코 다르지 않은 일입니다.

차별하지 않기 위해, 어디까지 해야 하나요?

자신이 차별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무리 부드럽게 들어도 대단히 기분나쁜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차별을 하면 안 된다"라는 얘기를 하면, 이런 공격도 많이 받습니다. "당신이 만드는 XXX도, 이러이러한 점이 부족한데, 그렇다면 당신도 차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와 같은 얘기이지요. 또는, "도대체 뭘 어띠까지 해야 차별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냐?" 면서 허탈해하거나 막막해 하시는 분들도 많이 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은 불가능한 전제 하나를 상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누구도 차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입니다.
인간의 인지구조는 대단히 불완전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것 밖에 알 수 없고, 그 조차도 우리의 편견에 의해 왜곡된 잔상밖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제 우리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있어"라고 얘기하는 것은, 마치 "이제 우리 조직에는 어떤 성폭력 문제도 발생하지 않고 있어"라고 자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약자에 대한 차별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또 약자에게는 목소리가 없거나 작기 때문에 그 차별이 수면으로 드러나고 사회적으로 인지되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성폭력 피해자가 직장에서 가해자에게 웃으며 과일을 깍아 준다고 해서, 우리는 결코 그 차별과 억압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목표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려 하는"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차별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차별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중립기어를 놓은 자동차는 내리막길로 가속도를 받으며 내려가듯, 이 기울기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방관하는 것은 차별과 억압을 더욱 세차게 가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더욱 편리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앱을 만들 수록, 그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겪는 차별의 크기는 더욱 커져갑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서 두 손을 놓고, 접근성 지원을 "나중에 여유 있을 때 하는 일"로 미루는 일은, 차별과 억압을 부채질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접근성 지원을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이 글을 읽고, "뭐 부터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셨나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긴 글을 읽어주시고, 또 이 다음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까지 해주신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습니다. 그리고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접근성 지원을 위한 첫 한 발자국을 내딛는 일은, 아주 쉽다는 점입니다.
접근성 지원을 하기 위해, 대단히 방대한 Web Accessibility Contents Guideline을 숙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HTML의 Accessibility Spec들을 공부할 필요도 없습니다. 새로운 디자인 원칙이나, Human Computer Interaction 분야의 최신 논문을 읽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장애인의 입장에서 제품을 써보는 일입니다.
Android에서는 "설정"앱의 "접근성" 메뉴에, iPhone에서는 "설정"앱의 "손쉬운 사용" 메뉴에 다양한 옵션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옵션들이 있는지, 그 옵션들의 설정값을 이리저리 사용해보세요. 기본 폰트 크기를 크게 키워보세요. 안경을 쓰고 있다면, 안경을 벗고 앱을 써보세요. 핸드폰을 멀찍이 두고 앱을 써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이 핸드폰을 어떻게 쓰시는지 살펴볼 수도 있죠.
다음으로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스크린리더를 사용해봐달라는 것입니다. iPhone에 내장된 VoiceOver, Android의 Talkback등은, 그 사용법이 매우 직관적이고 간단해서 금방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스크린리더를 잘 지원하는 일은, 단순히 시각장애인들에게만 효용이 있는 일이 아니라, 손가락 없이 스위치컨트롤이나 VoiceControl을 사용해 앱을 쓰는 사람들도 모두 이득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스크린리더를 잘 지원하기 위한 첫 번째 스텝은 당연히도, 그것을 써보는 일입니다.
스크린리더를 쓰는 일이 아주 막막해보이고, 또 어려워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까봐 제가 짧은 비디오들로 사용법을 안내하는 튜토리얼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꼭 시도해봐 주세요. 당신이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앱을 사용하는 경험은, UX에 대해, 정보구조에 대해, 디자인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선사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발견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접근성 지원이라는 게, 결단코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한 두 줄의 코드로, 누군가의 사용자 경험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죠.

참고자료

1: 국내 등록 장애인은 267만 명이고, 또 접근성을 고려해 제품을 만들면 오히려 기존보다도 더 적은 비용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장애인의 수가 적어보이는 것은, 그저 그들이 수많은 차별을 받아 사회에 나오지도, 노출되지도 못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