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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리자로서의 목표

Created
202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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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올해에는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추가로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만큼 신참내기 관리자로서 꽤 도전적인 목표를 스스로 세워봤습니다. 도전적인 목표인 만큼,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야 이루게 될 확률이 올라므로, 제가 세운 목표 중 가장 중요한 것들 몇 가지를 여기에 공개합니다.

목표: 구성원의 주 40시간 근로와 주 120시간 근무를 달성한다

무슨 말장난인가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저의 진지한 목표입니다. 이는 다음의 가정에 근거합니다.
첫째. 수면은 근무입니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연장에 녹이 슬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중요한 과업입니다. 녹이 슨 연장은 기계를 멈추거나, 최악의 경우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동작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지식산업 현장에서 제일 중요한 연장은 노동자의 두뇌입니다. 그리고 수면은 두뇌에 쌓인 각종 쓰레기와 찌꺼기를 청소하는 일입니다. (참조: 사이언스 타임즈)
녹슨 총에서 나온 총알이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것 처럼, 녹슨 뇌에서 무슨 버그가 나올지 알 수 없으며, 회사는 그러한 위험비용을 감수 할 수 없습니다. 특히 무서운 점은, 수면부족으로 인한 인지저하를 본인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참조: Sleep deprivation: Impact on cognitive performance)
이는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 “나는 안 취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술을 마셨으면 아무리 스스로가 안 취했다고 느껴도 운전대를 잡으면 안 되는 것 처럼,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 코드를 작성해선 안 됩니다. 오히려 정말 중요한 문제라면, 사실 뇌는 수면 중에도 그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새벽 2시까지 무슨 수를 써도 안 풀리던 문제가, 자고 일어나니 2분만에 풀려버리는 현상은 결코 개인적인 경험이나 우연이 아닙니다.
둘째. 멍 때리기는 근무입니다. 창의적인 활동은 집중시간이 아닌 이완시간에 일어납니다. 집중을 할 때는 해당지식이 다른 지식과 연결되지 않거나, 한정된 범위 안에서 연결됩니다. 당연합니다.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어떤 지식이 다양한 지식들과 연결지어지고, 그 연결의 방식을 이리저리 바꾸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활동은 이완시간, 즉 “멍 때리는 시간”에 일어납니다. (참조: 멍때리기의 기적)
다들 여유로운 아침, 또는 자기 전에 하는 샤워시간에, 공원을 산책하면서 가장 멋진 아이디어들을 떠올린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개인적인 경험이 아닌,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입니다. 지식산업 종사자가 산출할 가장 중요한 생산물은 이러한 “아이디어”입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휴식과 멍 때리기는 당연히 중요한 근무입니다.
셋째, 가정에서 행복하기는 근무입니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고, 가정과 직장을 구분해야 하지만, 구분할 수 없는 영역들도 필연적으로 많습니다. 가정에서 겪은 불행을 회사에 출근하면서 편리하게 잘라낼 수는 없습니다. 가정에서 불행을 겪으면 회사일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사적 영역에 제가 덧붙일 수 있는 말은 적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과로는 가정에 불행을 가져온다는 점입니다. 직장에서 아무리 인정받더라도, 과로가 일상이 되면 가정에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과로를 줄이고, 소중한 사람들과 더 많이 대화하는 일은 창의력을 키우는데 필수적일 뿐 아니라, 회사에 집중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여기까지 중간 결론을 내자면, 구성원분들은
잠도 충분히 잘 자야 하고,
가정에도 충실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자기개발도 해야 하며
심지어 그 와중에 멍까지 때려야 합니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입니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명확한 결론이 하나 도출됩니다.

회사에서의 근로를 8시간 안에 끝내야 합니다.

야근을 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열정과, 남는 일은 야근해서 하지라는 나태는 종이 한 장 차이이며, 설령 이런 야근이 열정에서 시작했더라도 나태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8시간 안에 퇴근을 하지 못한다면 시한폭탄이 터진다는 마음가짐으로 근로해야 합니다. 추가근무를 한다는 선택지는 일상적이어선 안 됩니다. 그것은 1년에 1~2번 쓸 수 있는 비장의 카드여야 합니다. 이렇게 추가근무를 제외하면, 비로소 보이는 다른 선택지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자동화하기, 위임하기, 이를 위한 지식 나누기, 더 효율적으로 회의하기, 함께 일하기, 한 번에 일하기, 비동기적으로 일하기, 중요하지 않은 일을 안 하기, 나의 역량을 높이기, 점진적으로 배포하기, 쉬운 말로 소통하기, 도움을 요청하기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선택지들은 사실 어제 일했던 방식으로 오늘 좀 더 일하기에 비하면 훨씬 어려운 방식입니다. 그렇기에 할 가치가 있고, 이를 해냈을 때에 구성원 분들이 레벨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어려운 방식이 일상이 되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구성원 분들은 회사에서 주 40시간만 근로해야하며, 지식노동자로서 수면/멍때리기/행복하기 등등을 총 합하여 주 120시간 일해주셔야 합니다. 워라밸을 추구하는 목표같지만, 사실은 정 반대의 목표입니다. 저는 구성원분들이 정말로 자면서도 제품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누군의 강요로 이뤄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악독한 관리자도, 노동자가 꾸는 꿈까지 간섭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품에 대한 고민 자체를 스스로 즐겁고 보람있게 느껴야 합니다. 관리자는 이를 강요 할 수는 없지만,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환경을 가꿀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조직 관리자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