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제일 중요한 것이 “어떻게 하면 조직 구성원들이 행복해질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고민은, 이 고민의 과정에서 생기는 하위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조직 구성원들이 가장 돈을 많이 벌어오게 할까” 같은 것이 더 적절한 고민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회사에 돈을 벌기 위해 모였으니까요.
그런데 돈을 왜 벌어야 할까요?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돈을 버는 것은 어디까지나 수단이고, 그 결과물은 행복이어야 합니다. “그런 건 나도 알고 있어” 라고 생각하셨나요? 사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진리가 단순한 만큼, 망각하기 쉽다는 사실도, 이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나요?
호르크하이머는 우리의 이성을 객관적 이성과 주관적 이성으로 구분합니다. 객관적 이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성입니다. 객관적인 “이치”가 무엇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등을 탐색하는 이성이죠. 주관적 이성은 “계산”을 하는 이성입니다.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그러기 위해 무엇을 언제까지 하면 될지 등을 판단하는 이성이죠. 이 두 이성은 모두 필요합니다. 예컨대 객관적 이성이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최소한의 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그 “최소한의 부”를 얻기 위해 주관적 이성이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식이죠. 그런 의미에서 호르크하이머는 주관적 이성을 “도구적 이성”이라고 불렀습니다.
문제는 이성도 근육과 같아서, 자주 쓰는 이성은 강해지고, 그렇지 않은 이성은 퇴화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어떻게하면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등을 고민하면서 도구적 이성을 강화시킵니다. 우리가 원치 않아도 시장 상황, 또는 조직의 보상체계등이 우리로 하여금 이런 고민을 지속하도록 강제합니다.
반면 우리가 객관적 이성을 강화시킬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사색, 명상, 기도, 문학, 토론과 같은 활동은 아무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작정하고 하지 않으면 평생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도구적 이성은 점점 더 쎄져서, 마침내 원래의 주인인 객관적 이성에게 월권을 하게 됩니다. 원래는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었는데, 어느 새 돈을 버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해지는 것이죠. 이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은 어렵습니다. 실제로 호르크하이머는 이것이 현대의 많은 모순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았습니다.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와보겠습니다. 저는 리더의 역할이 구성원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객관적 이성에 의하면, 이는 가장 가치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 행복할까요? 바로 다른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때 행복해집니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성공적인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보상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 또는 이에 딸려오는 부가물입니다.
결국 제품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것,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보다 더 큰 목표의 하위 목표임을 인지하는 것은, 그 큰 목표에의 달성 가능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추구하지 않는 목표는 달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애기하면 또 “구성원의 행복과 회사의 이익이 대립이 될 때”는 어떻게 할지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만 이것은 별도의 주제로 다음에 제 의견을 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