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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체르노빌

Created
2021/07/10
Tags
Review
Film
우리는 체르노빌 발전소가 폭발했음을 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간단하다. 우리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뒤의 잔해가 찍힌 사진을 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당시에, 아직 폭발 잔해의 사진이 찍히지 않은 시점에, 원자력 발전소의 직원들은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커피를 마시다가 내가 찻잔을 내려 놓았다. 그 다음 순간 몸이 붕 뜨는 것을 느끼고 창문이 깨지고 테이블이 박살났다고 해보자. 내가 내려놓은 찻잔이 폭발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바로 인식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찻잔이 어떻게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체르노빌의 엔지니어들이 겪었을 상황은 이와 비슷하다. 그들은 폭주하는 발전소를 정지시키는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발전소를 정지시키는 버튼이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정황이 원전이 폭발했다고 말할지라도, 정황만으로 원전이 폭발했다고 믿는 것은 과학적인 사고가 아니다. 정황은 사람을 속일 수 있다. 다이아몬드의 주인들이 차례차례 사망하는 정황이 있을 때, 사람은 다이아몬드에 저주가 깃들었다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과학적인 사고는 정황만으로 속단을 내리지 않고 더 많은 자료를 모아 정보를 정제해 내어 이론을 만들고 실험하여 검증하는 것이다.
영화의 등장인물들 모두, 이 출발선을 공유한다. 아무도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다. 추측만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무슨 추측을 할 것인가"에 대해 서로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누군가는 원전이 폭발했을리가 없다는 믿음을 전제하고 추측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원전이 폭발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고 추측을 시작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그리고 누구의 선택이 옳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과학소설이나 과학영화의 묘미는, 이 차이가 순전이 우연이나 개인적 기호에 의한 것이며, 누구의 선택도 단정적으로 옳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데 있다. 하지만 드라마 「체르노빌」은 이 차이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심지어 강요되는, 그래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완벽하게 틀린 선택을 하게 되는 사례를 보여준다.
상호 모순되는 두 명제 중 어떤 명제를 참이라고 볼 것인지 결정하는 데에 일반적으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체르노빌의 경우엔 다르다. "원전이 폭발했다" 라는 명제와 "원전이 폭발할 리가 없다"는 두 가지 명제가 서로 대립 될 때, 우리는 반드시 "원전이 폭발했다"고 보고 행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원전이 폭발하지 않았을 때 할 일은 별로 없는 반면, 폭발 했을 때 해야 할 일은 아주 많기 때문이다. 할 일일 없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그 결과 "할 일이 없었던 것"으로 나중에 드러난다면, 최악의 피해는 전화를 받은 사람들의 귀찮음 정도다. 반면 할 일이 많은데 사람들을 부르지 않았다면, 최악의 피해는 훨씬 더 많은 규모의 죽음이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원전이 폭발 했다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그리고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원전이 폭발하지 않았다고 믿고 추론을 시작한다. 드라마는 그들을 비난한다. 시청자들도 그들을 비난한다. 왜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는가. 왜 알량한 명예를 지키기 위해 수억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는가. 왜 300뢴트겐까지 측정 할 수 있는 측량계에서 300뢴트겐이 측정되었을 때, 그 보다 훨씬 많은 방사능이 나오고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하지 않는가. 그들은 어느새 악마가, 또는 바보가 되어있고 우리는 다시는 그런 악마와 바보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믿어야 할 것보다 믿는 레가소프보다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원전 기술자들을 닮았다. 전 지구적 온난화로 생명의 96%가 멸종한 폐름기 대멸종이 일어났을 때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온도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당장 10~20년 안에 수억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하기 직전인 지금, 우리들 대부분은 이따금씩 들려오는 이상 기후와 자연 재해 소식들을 애써 무시하려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믿어야 할 것과 믿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이 인류의 본능이 아닐까. 대부분의 인류가 그렇다면, 지금 원전을 운영하는 인류의 대부분도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체르노빌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사람들 때문에 결함을 안고 완공되었고, 운용되었고 폭발했다. 그리고 인류는 지금도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탄소배출을 당장 멈춰야 하는 이 시점에 탄소를 신나게 태우며 누구에게 어떤 효용도 주지 않는 가상의 화폐를 채굴하고 있다. 그런 인류가 수 많은 원전을 지금도 운용하고 있다는 것에서 나는 공포를 느낀다. 인류에게 원자력을 운용하게 하는 것은, 세발 자전거를 탈 아기에게 승합차의 운전대를 넘긴 꼴 처럼 보인다. 인류는 원자력을 운용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 우리는 우리 분수에 맞는 삶의 방식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